이집트 비의 체계 최고 경전

‘나는 왜 태어난 걸까?’

 

누구나 겪는 사춘기 시절, 애태웠던 질문이다.

당시 유행하던 SNS엔 관련된 글로 도배됐었다.

시간이 지나며 어릴 적 글에 얼굴이 붉어졌지만 해마다 찾아오는 감기처럼

비슷한 질문은 계속되었다.

 

‘나라는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인가?’

‘신은 존재하나?’, ‘신이란 무엇인가?’

답이 보이지 않는 질문을 물고 늘어지는 한동안은 그저 울적했다.

종종 ‘나 좀 감수성 넘치는 듯?’ 나르시즘에 빠지기도, 생각을 지우려

밤새 게임만 했던 적도  또 길거리 점집을 헤매며 ‘저는 어떤 사람인가요?’

방황하기도 했다.

당시의 질문에 나는 심한 중2병을 앓고 있다고 스스로 진단 내렸다.

이런 저런 고민이 불쑥 얼굴을 내밀 때마다 급한 불을 꺼주던 방식은

‘점 보러 가기’였다. 나는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에 그들은 답은 굉장히 빨랐다.

 

“카드 한 장 뽑아봐!”

“생년월일시 말씀하세요.”

“손 이렇게 펴 봐.”

 

오행이 어떻고, 직업을 나타내는 손금 선이 어떻고, 이 카드를 뽑았으니 어떻고.

복채를 건네고 나서며 가벼워진 발걸음 이면엔 질문 또한 스멀스멀 커져갔다.

‘점술 그 기저에 깔린 원리가 정말 궁금해!’

 

점성학, 타로 등 오컬트 관련된 책을 읽다 보면 빠지지 않는 단어가 있다.

헤르메스학, 카발라, 에메랄드 타블렛.

단어들이 반복되니 자연스레 머리에 새겨지고

영화, 드라마, 미술과도 같이 예술분야에서도,

인문학, 철학 서적에서도 세 단어가 자주 등장하고 있었던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토대는 <헤르메티카>라는

이집트 비의 체계 최고 경전이라는 사실까지도.

논어를 읽지 않고서 공자의 사상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주역이 빠진 사주는?

당시 점술 체계와 마법 공부 공백에 갈증이 심하던 나는

독자로서 좋은글방에서 번역, 출판한 <헤르메티카>를 구매했다.

생각보다 책이 얇았지만 문장을 곱씹어 읽다 보니 경전의 옹골찬 무게가 느껴졌다.

허기졌던 내가 여러 번 읽고 또 읽었던 문장이다.

 

13. 일곱지배자의 본성을 깨우치고 그들의 속성을 나누어 가진 인간은

우주의 경계를 뚫고 나가 자신에게 불을 지배할 힘을 준 이가 누구인지

알고자 하였더라.

24. 육체적 감각은 그들의 원천으로 돌아가게 하라.

몸의 감각이 상승하여 각각 고유한 원천으로 돌아갈 것이니,

각자 부분으로 나누어져 에너지와 섞이리라.

감정과 열망은 어리석은 제 본향으로 돌아가리라.

 

26. 이로써 우주적 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인간으로서

여덟 번째 영역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

 

「헤르메티카」, 좋은글방, 2018, 18p, 24~25p

<헤르메티카>는 말한다.

무지에서 벗어나 우릴 가둔 세계의 틀, 즉 제한된 인식 구조 바깥으로

고개를 내미는 것이 인간의 가장 큰 특성이라고.

근원에 대한 계속되는 질문. 부단히 알고자 하는 욕망.

이것이 신성을 따르는, 진보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이라고.

그야말로 ‘사이다’였다.

생년월일시를 따지는 여러 점술 체계에서 대우주의 흐름이 어떻게

여러 층위(기질, 성격 등)에 걸쳐 소우주, 개인에 작용하는지.

나는 왜 끝없이 갈등하고 밤을 지새우는지.

어떻게 해야 이 무지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그 이론적 토대가 여기 있었다.

다른 오컬트 책을 읽으면서도 4원소, 12별자리 키워드 암기가 아닌

힘의 진행 과정이 파노라마로 펼쳐지고 있었다.

왜 그토록 유명한 그리스 철학자들이 <헤르메티카>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는지

감히 헤아리며 공감했다.

물론 이 희열의 과정이 그저 책을 읽는다고 자연스레 되진 않았다.

여러 번 곱씹고 되뇌며 때에 알맞게 의미로써 찾아왔다.

분명 힘겨운 과정이었지만 결과는 정말 즐거웠다.

 

<헤르메티카>는 여러 버전이 있지만 좋은글방에서 번역하여 출판한 책은

캠브리지 대학 출판부에서 펴낸 <HERMETICA>이다.

모두 열아홉 권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두 권이 유실되어

현재 열일곱 권만 전해지는 <The Corpus Hermeticum>.

목차와 내용을 살펴보면 신, 우주 만물의 근원과 그 구성원리,

3겹 몸을 가진 인간의 본질과 실체에 대하여,

입문과 수행, 깨달음의 방법 등 구성되어있다.

 

타로, 점성학 같은 서양 비의 체계 속의 점술이나 방편들을 다루는 자,

오컬트 공부에 목마른 자, 정해진 운명의 틀을 깨고 진보를 희망하는 자,

신화, 인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찾을 수 있는 오컬트 철학을 알고싶은 자,

굳게 닫힌 상징의 빗장을 열 수 있는 실마리를 얻고 싶은 자,

예술 활동을 하며 영감에 목마른 자 모두,

<헤르메티카> 행간에 차고 넘치는

어마어마한 비의를 거머쥘 수 있길 바란다.

물론 나 역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