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컬트 관련 컨텐츠가 어느 때보다도 넘쳐나는 지금, 마법은 더 이상 신비의 영역이 아닙니다. 표현과 형태만 다를 뿐, 모두 마법에 근간을 두고 우리는 상상력을 펼쳐내고 있습니다. 모두 마법과 신비현상에 대한 첫 경험은 다를지라도 근본적인 호기심은 같은 곳에서 시작합니다. 이는 인간의 본능입니다. 유명한 SF작가이자 미래학자인 아서 클라크는 ‘고도로 발전된 기술은 마법과 구별되지 않는다.’ 라는 말을 남겼지요. 또한 마법사 프란츠 바르돈은 ‘마법은 신성한 과학이고 지식의 총체이다.’ 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어쩌면 반대극성의 두 관점이 사실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마법을 공부하는 마법사임을 자처하는 10가지 이유를 제시하고자 합니다.
1. 인생을 마법사로 살 수 있습니다.
마법을 공부하는 우리, 마법의 관점에서 삶을 바라봅니다. 프란츠 바르돈의 <헤르메스학입문>에서 마법사의 미덕은 지식, 용기, 의도, 침묵(솔로몬의 네 기둥)입니다. 우선 마법을 일으키기 위한 지식을 공부하고 적절한 의지(용기-의도)를 발휘하여 그 결과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것이 마법사의 기본자세지요. 침묵은 힘을 고정하고 확고하게 만들기 위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오컬트(라틴어 Occultus – 숨겨진 것)라는 명칭이 생겨났습니다. 마법작업은 여러 차원에 걸쳐 이루어집니다만 사실 물질계의 일반사회에서 일처리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4가지의 미덕을 깨닫는다면 어떤 곳에서든 일처리가 탁월한 ‘해결사’같은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겠지요. 나 자신이 마법사로 변하는 모습이 즐거운 학문, 공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 자신의 앞날에 대해 깊이 통찰하게 됩니다.
마법의 매력적인 분야 중 하나는 점술입니다. 타로와 점성학, 그리고 스크라잉, 꿈해석, 펜듈럼, 지오맨시(땅점), 손금, 관상 등 점술의 분야는 서양마법의 기본철학인 ‘카발라’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가장 멘탈적이고 관념적인 영역인 우주보편법칙의 원리를 알아나갈수록, 현재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어떤 결과를 빚게 될지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됩니다. 자신을 먼저 바라보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이지요. 어쩌면 놀랄지도 모릅니다. 나중에는 특별한 점술기법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왠지 ‘쎄한 느낌’ 그리고 ‘촉’이 놀랍도록 정확해질테니까요.
3. 신화와 인문학, 철학, 과학의 원리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철학자와 위인들, 그들은 마법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르네상스의 웅장한 미술들, 뉴턴과 라이프니츠, 아인슈타인 같은 인물들도 연금술과 마법, 카발라에 대한 지식을 겸비한 채 과학과 예술을 발전시켰습니다. 마법은 인류지식의 ‘거인의 어깨’와도 같습니다. 신화의 메타포도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대우주의 보편적인 힘들을 캐릭터화하여 상호관계를 스토리텔링한 것입니다. 우리는 신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드라마와 영화, 연극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마법을 공부하다보면 하나의 학문에서 또 다른 학문을 열어젖히는 열쇠를 얻게 되죠. 그 뿌리가 같았기 때문입니다.
4. 나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해가 높아집니다.
마법의 첫 시작은 자신을 먼저 통찰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다른 사람들은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죠. 가족, 직장, 연인, 친구관계, 반려동물, 혹은 자신의 수호자와 영존재와의 관계를 풀어나가는 방법을 알아내게 됩니다. 무엇을 피해야하고 무엇을 직면해야하는지 마법을 공부하며 찾아낼 수 있습니다. 어쩌면 괴로운 과정일수도 있지만 노력을 들인만큼 타인, 혹은 영적인 존재와도 원만한 관계를 풀어낼 수도 있겠지요. 각자가 뿜어내는 행동패턴(언어와 문법)을 이해하고 마법사적인 공감능력으로 가능해집니다.
5. 영-혼-육의 균형잡힌 발전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영-혼-육의 균형적인 발전은 마법사에게 필수적입니다. 멘탈적, 아스트랄적, 물질적 차원에서 힘의 불균형이 일어난다면 질병이 나타나기 쉽습니다. 물론 발전의 과정으로써 잠시동안 불균형의 상태를 취할수도 있겠지만, 마법사는 원하는 시간, 공간에 따라 균형있게 행동합니다. 사회생활을 잘하는 것은 물론이요, 어떤 곳에 가도 분위기에 녹아들 수 있습니다. 아스트랄 여행을 통해 원소 왕국을 방문한다면 각 원소 왕국의 법도를 따르며 그곳의 지식을 습득합니다. 공기원소 존재와 역동적인 춤을 함께 춘다거나, 불원소 존재의 직설적인 말투를 따라하며 서로 친해지는 것이지요. 반대로 환경에 녹아드는 만큼, 어떤 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을 확고한 의지력을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마법사의 행동과 과정은 카르마의 원칙에 따라 행합니다.
6. 저 너머의 영존재와 소통하고 지배할 수 있습니다.
소환마법과 스크라잉(투시) 혹은 아스트랄 프로젝션을 익힌다면 더더욱 흥미로운 영역이 열립니다. 한낱 귀신과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각 계에 존재하는 지성체-영존재들을 직접 만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균형적인 발전을 이룬 마법사라면 저 너머의 차원에서는 그의 수준을 한눈에 알아볼 것입니다. 마법사가 자신보다 힘이 강하다고 느끼면 영존재는 해당 마법사에게 복종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가르쳐주려 들 것입니다.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온 메피스토펠레스 이야기는 이러한 맥락의 일부에 불과하답니다. 이러한 관계를 잘 풀어낸다면 그들과 좋은 친구가 될수도 있겠지요.
7. 별의 충동과 운명을 지배하는 법을 알게 됩니다.
전생, 현생, 미생! 듣기만 해도 흥미로우면서도 무서운 이야기들, 모두 카르마의 법칙 하에 일어납니다. 원인과 결과의 법칙이지요. ‘나는 왜 이렇게 사는가’ 고민이 된다면 지극히 정상이며, 이는 마법적인 고민의 첫 시작일 것입니다. 만물이 변화하는 만큼 인간도 변화를 추구합니다.(물론 변하지 않는 것을 온 힘으로 추구할 수도 있겠습니다.) 더 나은 인간이 되고자 고민하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래서 마법사의 삶은 수행자의 길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충동을 컨트롤하며 마법사는 운명을 지배해 나가는 것이지요. 자신의 한계를 깨뜨린 수많은 인류사의 영웅들은 어찌보면 마법사의 삶을 살았는지도 모릅니다.
8. 우주보편법칙과 섭리를 깨닫고 나아가야 할 때와 물러나야 할 때를 알게 됩니다.
우주보편법칙을 깊이 공부한 숙련된 마법사라면 운명에 대해 깊은 통찰력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많고도 많은 영적인 분야에서 말하는 깨달음, 해탈 역시 중요한 숙제일 것입니다. 헤르메스학-연금술, 카발라, 요가, 점성학 등등 수많은 마법과목들을 마스터해나가다보면 마법사는 모르는 것이 점점 없어집니다. 고민은 적어지고 마음 속엔 여유가 깃들 것입니다. 카발라는 마흔이 넘어야 공부할 수 있다는 유대인들의 말이 있습니다. 최소 한 세대만큼은 인생을 경험하고 마법공부를 시작하라는 의미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미 알아버린 것. 멈출 수는 없겠지요. 우리는 착실하게 단계를 밟아 수행하면 됩니다.
9. ‘신과 인간’에 대해 올바로 알게 됩니다.
수많은 철학자들이 풀어내려고 했던 숙제, 신-대우주와 인간-소우주에 대해 오류없이 논할 수 있게 됩니다. 올바르게 공부해온 마법사라면 세간의 종교적인 교리에 얽매이지 않고도 그는 법칙의 맥락을 짚어내어 현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모습을 취할 것입니다. 진정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지요. 이론-실천이 함께하는 마법사라면 ‘믿음이 앎’이 되는 경험으로 더욱 확고해질 것입니다. 가끔은 마치 신처럼(!) 마법사의 의지가 담긴 말 한마디만으로도 원하는 바가 즉시 이루어질 수도 있겠지요. 마법사의 겸손함과 자비심 그리고 신에 대한 경외심은 마법인생을 꿰뚫는 중요한 열쇠이기도 합니다.
10. 멋있습니다.
말이 필요 없습니다. 마법사인 우리, 쫌 멋있습니다. 우리 삶에 ‘마법’이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참 설렙니다. 나만 알고있는 자신만의 마법무기를 갖추고 우주보편법칙에 따라 일하기도 하며, 자신의 의지에 따라 뜻한 바를 실천할 의지와 능력을 가진 강력한 마법사. 모두의 바램인 ‘완벽함’을 성취한 마법사는 어디서든 빛날 것입니다.
이상입니다. 마법은 신비의 학문입니다. 하지만 과학적인 방법론과 철학적인 통찰로 그 경지는 깊어집니다. 차근차근 나아가다보면 어느새 자신이 꿈꾸던 경지에 이미 도착했을수도 있지요. 마법사가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것, 그리고 각 영역에서 필요한 경험을 체득하는 것을 ‘경로작업-패쓰워킹(Path-walking)’이라고 합니다. 개인마다 나아가는 경로는 다를지라도 카발라 생명나무의 객관적인 지표 아래 길을 선택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경험-경로는 유의미하고 특별하면서도 보편적입니다. 즐거울수도 혹은 괴로울수도 있지만 우리는 자신이 선택한 길을 떠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마법사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