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점성학의 목적과 연구방법

★ 점성학(Astrology)이란 무엇인가?

우선 점성학이 학문인지 술법인지 (따라서 점성학인지 점성술인지) 논하는 것은 참으로 부질 없는 일입니다. 번역어에 수반되는 ‘의미화’를 위해서는 그 목적과 의미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점성학의 목적과 의미는 가장 먼저 점성학이라는 분야가 어떤 배경에서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는지를 파악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다양한 근거와 분석, 논리적 추론이 필요하겠지요.

그런데 “증거를 대봐”라는 말 속엔 근대적 학문 연구법, 그러니까 실증적 방법론에 대한 확신이 들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증거가 ‘검증’의 모든 것이라는 생각이지요. 그러나 점성학을 비롯한 비의적 학문을 연구할 때 이런 방법으로는 곧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점성학뿐 아니라 카발라나 헤르메스학 등 비의적 학문을 연구하는 데 공통적으로 부딪히는 문제지요. 인류 문명의 기저에 살아 숨쉬는 이러한 비의들을 연구하기 위해, 많은 학자들이 남아 있는 퍼즐 조각, 그러니까 무덤에서 파헤친 유물들을 이리저리 끼워 맞추며 다양한 논문을 써냈습니다. 하지만 빈 구멍을 메우기엔 역부족이었지요. ‘물질적 증거’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 후대의 ‘위작’이라거나 어딘가 비어있는 ‘불완전한 학문’이라거나 덜 떨어진 ‘원시인의 가상한 노력’이라는 식의 결론이 불가피했으니 말입니다.

제국주의의 물결을 타고 수많은 유럽 학자들이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인도의 사막과 폐허를 헤집고 다녔습니다. 순수한 동기를 지닌 학자들은 거기서 자신들의 정신적 뿌리를 찾아내겠다는 일념으로 목숨을 걸기도 했지만, ‘인디아나 존스’에 등장하는 것 같은 탐욕에 눈먼 도굴꾼 학자들도 있었습니다. 어찌 됐든 이러한 작업들을 통해 근대의 안경을 끼고 옛 선조들을 깔보던 대중들에게 우리 선조들이 생각보다 그리 원시적이지만은 않다는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근대적 자만’이 뭔가 이상하다는 의구심도 스멀스멀 피어 올랐습니다. 고대의 지혜에 탐닉하여 미스터리로 발전시킨 마니아 층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인터넷이라는 공유의 바다에 떠다니는 엄청나게 많은 자료는 이러한 연구작업의 결과와 호응 방향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여러가지 상황을 놓고 고민한 결과, 우리는 점성학 연구방법으로 두 가지를 병행할 생각입니다. 첫째는 인문학자들이 일궈놓은 유물과 분석 작업의 성과들을 참조하여 재분석하는 과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고대 수메르와 바빌로니아, 이집트, 초기 헬레니즘의 점성학-천문학 관련 유물이나 텍스트를 재분석하는 작업입니다. 동시에, 더 본질적인 작업은 이들 고대 문명의 점성학-천문학의 성과물(관측이나 예언 텍스트 또는 그림들) 배후에서 실제 철학적 토대로서 이들을 아우르는 핵심 관념을 척도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힘의 본질과 실재화를 다루는 ‘비의 체계’를 중심에 놓고 거기서 뻗어 나온 점성학이라는 가지를 살펴 보는 것이지요.

물론 근대 이후 점성학자들도 표면적으로는 이 작업을 해왔습니다.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가 점성학을 가능하게 하는 명제라고 표명해왔으니까요. 그러나 이때 사용하는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토스의 이 정언은, 물질 우주(위)의 행성과 별이 인간의 삶(아래)과 조응 또는 결정한다는, 극히 제한적인 유물론적 패러다임이었습니다. 신의 일종이라는 생각이 팽배합니다. 맹목적인 ‘결과’에 집중합니다. 물론 적중률은 “맞으면 좋고 틀리면 어쩔 수 없는”입니다. 미신으로 대하는 것이 상식적인 사람들의 추세니까요. 점술을 업으로 삼는 점성가들에게는 매우 편리한 상황이지만, 점성학을 위대한 학문의 한 분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불쾌한 상황입니다.

이러한 추세를 바로잡을 생각은 없습니다.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점성학의 가치를 올바로 알고자 하는 탐구자에게는, 또한 비의 체계의 한 분야로 점성학을 바라보는 오컬티스트라면,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관념입니다. <헤르메스학연구소>의 점성학 연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 이제 다시, 점성학이란 무엇인가?

헤르메스학의 관점에서 또는 카발라의 신성방출 관점에서, 세계(눈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전우주)의 진화 방향은 ‘분화’이며 이것은 ’복합화’를 수반합니다. 진화의 마지막 국면인 인간과 그 거주지(이 둘은 질료가 같습니다.)에는, 가장 세분화된 진화의 코드가 앞선 진화의 모든 국면을 반영해 아우르며 존재합니다. 분화의 과정 중 모든 것을 반영하는 일단락-통합 국면인 셈이지요. 이처럼 개체화 본능은 우주 진화 과정의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한편 반대 방향으로 합일의 본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내재된 신(최초의 원인)과의 합일 욕구는 이를 드러냅니다. 모든 비의체계가 지향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곧 영적 진보의 방향입니다. ‘신성’으로 일컬어지는 힘의 ‘분화 – 합일’의 양 측면을 다루는 학문이 있으니, 바로 점성학(분화)과 연금술-알키미아(진보)입니다. 카발라는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철학적 토대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점성학은 근원적 힘이 분화하여 ‘실재화’하는 현상을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따라서 점성학에서 탐구하는 차원은 (카발라 용어로) 예찌라계와 앗시야계입니다. 특히 힘의 구체적 실재화 국면인 앗시야계에 집중됩니다. 우주적 힘은, 우리의 혼 및 아스트랄계와 관련해서는 공간의 개념으로, 물질계의 측면에서는 시공간의 개념으로 실재화합니다. 점성학은 그 실체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밀도와 형태, 영향력의 종류와 세기, 순수성과 복합성의 정도 등 우주적 힘의 실재화 과정이 점성학 개념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편 실재화되고 구체화된 힘들, 광물의 형태나 식물의 형태나 동물의 형태를 하고 있는 에너지 복합체를 거르고 걸러 순수 힘의 결정체를 뽑아내는 학문이 알키미아(연금술)입니다. 다루는 차원에 따라 다른 방식의 정련법이 필요하겠지요.)

고대 이집트인이나 수메르인들은 이러한 목적과 배경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발굴 보존된 유물들이 그 증거입니다. 이 두 문명의 오랜 교차 혼합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학자가 인정하고 있는 실증적 사실이므로 자세하게 거론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알렉산드리아라는 거대한 융합 용광로 이전부터, 창조와 진화, 대우주(세계 전체)-소우주와 관련해 동일한 열쇠를 쥔 사제-왕들의 교류가 이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스트랄계와 멘탈계를 오가는 것이 예삿일인 사제들에게는 특별한 물리적 교류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어쨌든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수메르, 바빌로니아, 히브리 등)의 점성학은 동일한 핵심을 공유한 두 체계에서 뻗어 나온 가지입니다.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에게 물질 우주와 별은 신의 대리자였습니다. 근대 유물론자들은 이 ‘미신적 관념’을 깨부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신이란, 근원적 힘의 실체를 가리키는 아이콘이며 힘의 진화 국면에 따라 다른 양태와 속성을 갖는다는 비밀을 알게 되는 순간, 그들의 미신 타파 노력이 얼마나 반(反)유물론적인지 깨닫게 됩니다. 전근대적 ‘미신’에서 벗어나는 순간, 점성학은 실체 없는 통계학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물론, 자연법칙은 신의 의지가 물질화된 현상이며, 이를 탐구하는 일은 힘의 실체를 유추할 근거를 마련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통계를 통해 본질을 알아낼 수는 없습니다. 유추를 통해 개연성을 밝힐 수 있을 뿐입니다. 관측의 발달과 함께 점성학은 시각의 제한이라는 미궁에 들어섰습니다. 사실, 사제권력과 왕권이 분리되고 권력이 왕권에 집중되면서 사제-왕의 전유물이었던 점성학은 다른 방법, 말하자면 세속적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관측의 발달로 이어졌습니다. 관측은 왕의 전유물이었습니다. 통치를 위해 신=자연의 뜻을 읽는 방법으로 말입니다. 그리스 로마를 거쳐 근대에 이르면 형이상학적 토대는 신화적 명칭이라는 상징에 밀봉된 채 남겨지게 되었지요.

아무튼,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두 문명이 만들어낸 점성학적 산물은 양상이 다릅니다. 시공간의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랄까요. 이집트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조건에서, 특정 시공간 즉 ‘지금 여기’에 집중했습니다. 그들의 점성학은 특정 시공간에 물질화되는 힘의 실체에 집중했습니다. 신전의 포지셔닝과 배치, 피라미드의 방향과 형태가 모두 점성학적 탐구에 따라 이루어졌습니다. (피라미드나 미라가 ‘지금 여기’라는 개념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자의 서>가 이야기하고 있듯이, 고대 이집트인에게 죽음은 여전히 ‘지금 여기’ 라는 시공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또한 관측을 통해 물질 우주에 드러나는 힘의 실재화 과정을 연구하고, 자연법칙 즉 신의 의지에 따라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통치의 척도로 이를 활용했습니다. 강력한 중앙집중적 왕권이 확립되어 있던 이집트에서 자연법칙을 ‘아는’ 왕은 신의 대리자였습니다. 자연법칙에 도사리고 있는 위계가 강조됐습니다. 신의 대리자는 시간을 정하고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원인적 힘인 신에 대한 탐구는 사제 집단에 의해 이어졌습니다. 이 둘의 미묘한 통합이 이집트 점성학의 특징입니다.

상대적으로 정치적 격변과 전쟁이 빈발했던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예측’과 ‘예언’이 점성학의 주된 관심사였지요. 물론 개인은 예측의 대상이 되지 못했습니다. 신의 뜻을 알고 통치하는 집단의 전유물이었습니다. 날씨를 예측하고 전쟁 결과를 예측하고 왕조의 몰락과 탄생을 예측하는 것이 점성학의 목적이었습니다. 그 모든 것은 신의 뜻이어야 했습니다. 따라서 수메르인이나 고대 바빌로니아인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신의 때’를 아는 것이 중요했지요. 관측에 비해 분석이 강조된 것은 이 같은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이 사용한 60진법은 관측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 매우 유용합니다. (10진법을 사용한 이집트인이 60진법을 사용한 바빌로니아인에 비해 공간가치체계(place-value system)이 뒤떨어진다는 Tamsyn Barton의 주장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러나 실재하는 바빌로니아 점성학 유물에는, 관측하고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치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힘의 구현으로 이어지는지 찾아내는 과정은 생략되어 있습니다. 힘의 작동 원리를 이미 알고 있던 사제들은 간단한 매뉴얼을 제시하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말하자면, “뉴문이 질 때 속도가 느리면 왕국에 무슨무슨 일이 벌어진다”는 식입니다. 이 쐐기문자 자료들을 보고, 당시 분석과 예측 기법이 발달하지 않았다고 단언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예측 방법은 사제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그들은 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고유 역할을 쥐고 있었습니다. 가설입니다만, 이들 중 일부가 사제집단의 영역 밖에서 돈을 받고 개인의 일생을 예측하기 시작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접하고 있는 주류 점성학은 이처럼 예측을 다루는 학문입니다. 그리스 로마의 세계 지배 이후 형성된 흐름이지요. 또한 그리스 로마의 개인주의적 성향은 개인의 천궁도를 만들고 개인의 일생을 예측하는 쪽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측 기법은 이에 상응한 쪽으로 치우쳐 발달하게 됐습니다. 개인적 목적으로 점성학을 활용하는 것은 진화의 방향에서 볼 때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관측이라는 물질적 증거 수집 방법을 확보하게 된 점성학은 점차 신탁과는 별도의 위상을 점하게 됐습니다. 이 같은 목적으로 제한된 시각에서 볼 때, 점성학의 뿌리는 메소포타미아의 예측 점성학이 되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성학은 여전히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 라는 헤르메스학의 정언에 기반을 둔 학문입니다. 이때 ‘위’는 물질 우주의 하늘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점성학의 목적과 연구방법을 바로잡는 우선 과제입니다.

앗시야계에서 벌어지는 힘의 실재화는 그 상위 차원의 영향력 아래 있습니다. 상위 차원의 법칙을 가리켜 우리는 운명이라 부릅니다. 물질 우주의 별자리와 루미너리 및 행성과 4원소 원리는 그 힘의 자취이자 대리자 격인 힘의 센터들입니다. 자연법칙의 중심입니다. 동일한 질료의 힘의 센터들이 우리 자신 안에도 존재합니다. 그 상응과 공명을 연구하는 것이 점성학의 목적입니다. 그것이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정확한 예측도, 예측한 결과에서 벗어나는 방법도, 여기서 출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