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카발라Ⅰ: 4계] 세상을 살피는 고요한 눈

이 땅에 발 붙여 살아가는 나 그리고 나를 둘러 싼 세상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이에 관한 상상의 나래. 한 번쯤 펼쳐 본 적 있나요? 어느 한 순간 ‘시작’이 곁에 성큼 다가섰으며 ‘끝’이 언제 불쑥 다가오는지를. 나란 존재는 대체 무엇인지, 어디에서 왔으며 또 어디를 향해 가는지를! 얽힌 질문의 매듭을 풀 거듭된 노력은 인류 역사가 도래한 이래로 줄곧 이어져 왔습니다. 문을 열 열쇳말은 곧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관한 고찰로 읽히며 나와 세상에 관한 진지한 탐구가 됩니다.

고대의 한 랍비는 카발라 방법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천사가 이 땅에 내려와 인간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육신을 입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흔히 ‘생명나무’라고 부르는 상징 체계는, 현현 우주와 인간의 영혼 안에 숨쉬는 모든 힘과 요소를 간결한 다이어그램의 형태로 정리하고자 한 것이다. 또한 각 요소 간의 상대적 관계와 위치를 지도처럼 눈에 보이는 형태로 펼쳐 놓았다. 말하자면 ‘생명나무’는 과학∙심리학∙철학∙신학을 망라하는 지식의 집약체이다. p. 37. <미스티컬 카발라>

다이온 포춘의 저서 <미스티컬 카발라>에서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존재 방식이 마치 전승의 이야기 꼴처럼 묶여 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낭만적이지요. 스승의 입가에서 제자의 귓전으로 울리는 음성과 가르침은 마치 한 권의 책처럼 가슴팍에 박힙니다. 약속이라도 한 듯 랍비들은 카발라를 가리켜 대천사 메타트론으로부터 전수 받은 지식의 정수라고 말하곤 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마법의 원리로 관철되어 온 진정한 열쇠. 이와 같이 카발라는 생명나무 다이어그램이란 복합적인 상징의 이미지로 온전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오컬티스트들은 자신이 작동시키고자 하는 힘을 선택하고 집중시키기 위해 특정한 주문을 활용한다. 이때 주문의 기본 뿌리는 카발라 생명나무다. 이집트 ‘신의 형상’을 취하든 노래와 춤을 통해 이악코스 화신을 만나든, 어떤 시스템을 선택하는 경우에도 내면에 있는 생명나무 다이어그램과 만나게 될 것이다. [중략] 이처럼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시스템을 적용해 보면, 카발라가 가장 기본적 원리라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될 것이다. [중략] 생명나무 공식 안에 이 모든 순수하고 온전하며 명료한 카발라의 개념이 요약되어 있다. 따라서 생명나무는 우리의 의식을 상승시키는 명상에 가장 적합하도록 만들어진 상징 문자다. 그래서 우리는 카발라를 가리켜 ‘서양 요가’라 부른다. p. 34-36. <미스티컬 카발라>

예컨대 미술관에서 미술 작품을 감상한다고 상상해 봅시다. 작가와 작품 그리고 감상자 간 직∙간접적인 상호 교류가 끊임 없이 일어납니다. 신과 나 그리고 이 세상으로 놓고 볼 수 있겠지요. 고도로 추상화 과정을 거친 작품 앞에 서면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요? 더군다나 작품의 제목이 “메타트론 작, <카발라Ⅰ: 4계, 가변 설치>, 연도 미상” 이라고 하네요! 눈을 크게 뜨고 찬찬히 살펴봅시다. 이 세상을 응축한 것이니까. 아주 구체적인 규칙들을 발견할 수 있겠습니다. 가만, 자세히 보니 그림의 부제로 ‘4계’가 씌어 있습니다.

각 경로의 본질은 두 개의 세피로트를 연결한다는 데 있다. 따라서 어떤 경로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명나무 위에 서로 연결되어 있는 세피로트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의 세피라를 단일한 계에서만 고찰하면 그 세피라를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하나의 세피라는 각각 네 겹의 본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p. 51. <미스티컬 카발라>

감상자의 입장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것은 물론, 작가의 입장에서 미루어 본 작품의 조형성 탐구를 상상해 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의 뭘 표현한 건지, 어느 것이 주가 되고 또 다른 어느 것이 부가 되는지, 색채와 필치가 어떠한지, 구도와 구성은 또 어떠한지, 전반적인 분위기와 함께 감상의 초점을 어떻게 맞추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살피는 고요한 눈으로 조우하는 것. 나와 세상에 관한 명료하고 체계적인 생각으로 자라납니다. 다양한 감상의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일단 아래의 인용문처럼 ‘4계’ 에 집중해 봅시다. 이 세상을 종으로 자르건 횡으로 자르건 간에, 자르는 방식에 따른 단면도를 놓고 보았을 때 비로소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세피로트의 본래적 영역은 아찔루트다. 그래서 아찔루트를 ‘방출의 세계’라고 부른다. 오직 여기에서만 신이 사제를 거치지 않고 직접 행동한다. 브리아에서는 신이 대천사를 매개로, 예찌라에서는 천사단을 통해 행동한다. 또한 앗시야에서는 이른바 먼데인 차크라(행성, 원소, 황도대의 12궁 등)라는 센터를 통해 작용한다. [중략] 이러한 표기 체계는 의식 마법의 토대로, 신성 명칭이나 탈리스만 마법, 타로 카드 등에 그대로 담겨 있다. p. 105. <미스티컬 카발라>

위의 4중 분류는 카발라와 관련된 사안은 물론 카발라에 토대를 두고 있는 서양 마법의 모든 사안에 큰 의미가 있다. 이 체계가 신성한 이름 테트라그람마톤의 4문자의 영향력 아래 있기 때문이다. [중략] 그래서 독자들은 테트라그람마톤의 정확한 발음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며, 이 발음을 알고 있는 누군가로부터 직접 전달받아야 한다. 테트라그람마톤의 진정한 발음은 ‘비의 중의 비의‘라고 할 수 있다. p. 107. <미스티컬 카발라>

아찔루트계-브리아계-예찌라계-앗시야계. 카발라Ⅰ: 4계로 잇는 삼라만상의 흐름 속에서 모호하지 않은 채 분명한 비의적∙마법적인 언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식을 채우고 연구하면서 명상하는 데 그치는 지적 장식물이 아니라 제 스스로 체화할 수 있는 그러한 것입니다. 뭉뚱그려 설명하지 않고 구체적인 나의 경험으로 빚는 것. 나와 세상에 관한 통찰이 빛납니다. 그제서야 비로소 나의 마법적 첫걸음이 되는 것이지요. 그 토대는 바로 카발라: 4계 탐구 가운데 자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