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영화 속 마법사와 현실의 마법사들

마법사하면 처음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영화와 게임에서의 마법사는 화려하게 적을 물리치며 위용을 떨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흔한 마법사의 모습이다. 파이어볼을 쏘고 하늘에서 운석을 떨어뜨리고! 번개와 얼음으로 적을 제압하거나, 세계 정복을 위해 골몰하는 어딘가 음침한 빌런-흑마법사의 모습도 떠오른다.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수많은 차원을 넘어다니거나, 콘스탄틴처럼 악마와 싸우는 퇴마사 같은 마법사들도 존재한다. 하나같이 능력을 이용하여 ‘인간이라면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들을 해내는 캐릭터들이다.

마법사가 등장하는 영화는 대부분 판타지 장르에 속한다. ‘현실이 아닌’, ‘상상의 소재’로 만든 것이지만 모티프는 분명 현실에서 생겨났다. ‘마법이 진짜 있어요?’라는 물음에 답하는 것과 같은 대답이다. 진짜 마법사들은 ‘물론 있지! 하지만 영화 속 마법사의 모습은 로망일 뿐!’이라고 답할 것이다.(물론 하루하루가 영화같은 현실의 마법사도 분명 있을 것이다) 동시에 영화 속 마법사들은 현실의 마법사들의 모습을 각색해서 표현한 작품이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

  1. 해리포터 시리즈

마법사 이야기를 하면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영화. <해리포터>는 한 때 마법열풍을 불러일으켰을 정도로 영향력이 컸던 작품이다. 마법학교 호그와트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마법사들의 이야기. 그 당시 십대 소년소녀들은 어쩌면 나에게도 호그와트 입학 편지가 부엉이로 오지 않을까 설레던 시절이 있었다. 지팡이를 들고 주문을 외우면 무언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들기도 했을 것이다.(물론 가능하다!) 현실의 마법사들은 실제로 지팡이와 주문으로 원하는 바를 이뤄낸다. 다만 지팡이를 사용하기 위한 훈련이 필요할 뿐이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초반에 주인공 3인방이 ‘윙가르디움-레비오사’ 주문을 연습하는 장면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또한 <해리포터> 세계관에 등장하는 마법사화폐(아스트랄 머니), 마법생물(아스트랄 생물), 온갖 종류의 마법약(포션)들도 이름만 조금 다를 뿐 동일하게 사용하는 개념이 많이 등장했다.

2. 마블코믹스, DC 코믹스의 마법사들

미국 코믹스 시장에 등장하는 마법사는 전통적인 서양마법사의 개념을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는 편이다. 기원을 따라가자면 다소 20세기 ‘황금새벽회(Golden Dawn)’ 계열의 마법사와 저서들을 많이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대체로 ‘소환마법’과 ‘다른 차원’과 접촉하거나 넘어다니는 자들을 ‘마법사’로 칭한다. 콘스탄틴처럼 마법진을 그려 영존재를 소환하거나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아스트랄 프로젝션’을 통해 직접 해당 영역을 방문하는 식이다. 주인공들은 지구영역 너머의 미지의 존재와 접촉하고 반목하기도 하며, 적절한 협상으로 원하는 것을 얻어내곤 한다. 대부분 인간이 승리하는 결말이지만, 영존재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자세한 사항은 콘스탄티누스의 <소환마법레시피>나 프란츠 바르돈의 <소환마법실천>을 읽어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을 많이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미국 코믹스의 마법사들은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3. 옛 애니메이션 속 마법사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중, 미키마우스가 마법사의 제자로 등장하는 환타지아(1940)를 기억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미키마우스는 청소가 하기 싫은 나머지 스승의 마법력이 담긴 모자를 쓰고 빗자루에 마법을 걸었다가 큰 사단을 내는 내용이다. 이때 미키마우스의 동작은 정말 에너지를 ‘쏘는’ 동작 중 하나인 ‘엔터싸인(Enter-Sign)을 매우 정석으로 보여준다. 미키마우스는 스승의 도구에 담긴 힘을 빌려 소원을 이뤘지만, 감당할 수 없었다. 결국 기다란 흰 수염에 대머리인 마법사-스승이 폭주하는 빗자루들을 물로 쓸어내며 사태를 마무리한다. 비슷한 모티프의 영화로는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마법사의 제자>(2010)가 있는데, 여기서는 마법반지가 마법을 일으키는 중요한 촉매제로 등장한다. <해리포터>의 지팡이와 마찬가지로 마법사가 자주 사용한 마법무기는 축적된 에너지가 막강하다. 만약 제대로 공부한 마법사라면, 함부로 자신이 사용하던 도구를 남에게 넘겨주진 않을 것이다.

4. 그렇다면 진짜 마법사는?

위의 미디어적 각색을 넘어서, ‘누가 보아도 마법사다!’라고 외칠만한 모습은 ‘덤블도어’와 ‘간달프’다. 흰 수염을 길게 기르고, 엄격하지만 누구보다도 자비로운 스승의 모습. 이 둘은 누구라도 ‘마법사’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법사의 스테레오타입이다.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힘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고 지혜로운 조언을 통해 주변 사람들을 이끌어 나가는 자! 우리가 영화와 게임으로 접하는 파괴만을 일삼는(?) 마법사들과는 다르다. 그들의 인격과 행보는 가장 현실의 마법사가 추구해야하는 경지라고도 할 수 있다.

사실 고대로부터 내려온 진짜 마법사(Magus)의 의미는 이쪽에 가깝다.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다스려 길을 이끄는 구원자이자 사제이며 현자다. 간달프는 마법보다는 반지원정대와 함께 직접 발로 뛰며 활약했고, 덤블도어는 강한 마법력으로 직접 악당들을 제압하기 보다는 주인공 해리포터의 지혜로운 조언자로 남았다. 이 모습은 타로카드의 메이저 아르카나 9번. 은둔자의 모습과 꼭 닮았다. 수염과 노인의 행색은 지혜를, 지팡이로는 굳건한 의지를, 로브는 본래의 정체를 숨기는 모습을 상징한다.​

현대의 마법사는 누구보다 현실적이며 가장 강렬하고 멋지게 삶을 살아내는 사람이다. 옷과 행색이 깔끔하고 누구와도 잘 어울리며 ‘고결함’과 ‘경건함’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필요한 때에만 마법을 사용한다. 그리고 ‘신’에 대한 믿음도 빼놓을 수 없다. 인류 최초, 최고의 학문인 마법을 공부하면서 모든 것의 근원인 ‘신’을 빼놓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대우주’에 대해 공부하고 체화해 나가는 것이 진짜 마법사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