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좋은글방 <미스티컬 카발라> 역자서문

역자서문


카발라를 처음 접했을 때가 생각난다. 이 놀라운 형이상학의 정수에 매료되어, 소개받은 입문서가 너덜거릴 때까지 몇 번이고 읽었다. 이스라엘 사이트와 영어로 된 웹 자료들을 찾아 읽었다. 감탄의 연속이었다. 성서를 읽고 신학을 공부해도 풀리지 않던 대목, 철학을 공부하다 막힌 대목, 신화학을 공부하다 미궁에 빠진 대목, 점성학을 공부하다 답답했던 대목. 그 모든 답이 있었다. 플라톤의 토대가 거기 있었고, 헤겔 변증법의 골격이 생생하게 살아 퍼덕거렸으며, 레비나스의 ‘얼굴’이 영원히 눈을 감지 않은 채 거기 있었다. 이시스와 이난나가 헤라와 아프로디테로 분열되는 장면이 거기 있었다. 우주와 인간이 그 안에 축약되어 ‘찾는 만큼’ 무한대로 답을 내주는 요술지팡이였다.

《미스티컬 카발라》는 두 번째로 읽은 카발라 입문서였다. 해박한 인문학 지식과 실천적 경험이 어우러진 이 책 덕분에 카발라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다이온 포춘의 말처럼, 답은 섬광처럼 찾아온다. 미로 속을 헤매다가, 수없이 많은 상징의 고리들을 따라가다가, 스핑크스의 질문에 불쑥 답을 내놓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역도 성립된다. 이 열쇠를 쥐고 있으면 세상 만물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다. 다이온 포춘은 카발라를 공부하는 방법으로 ‘명상’을 추천하고 있다. 생명나무의 각 상징, 그와 관련을 맺고 있는 다른 문화권의 수많은 상징들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사실 우리의 정신은 상상하는 것 이상의 잠재력을 품고 있다. 우리 속의 신성은 이 여행 속에서 깨어나 빛에 이른다. 여행길에는 서른두 개의 경로가 있다. 각 경로는 형형색색 다양한 형태의 ‘모든 것’을 품고 있다.

다이온 포춘은 자신이 추천한 방식에 충실하게 책을 써내려 갔다. 이 책 안에는 그야말로 엄청난 분량의 상징과 해설이 들어 있다. 심리학자답게 심리학은 물론이고, 신화와 인류학, 철학과 문학, 경제학, 자연과학, 심지어는 각종 속담과 전설까지 동원되어 각 경로를 채우고 있다. 그리고 오컬트의 정수가 곳곳에 숨어 있다. 의식마법, 연금술, 점성학, 타로 카드와 관련된 ‘열쇠’를 공개하고 있으며, 소환이나 탈리스만, 향과 보석 등의 마법적 원리를 분명하게 정리해 주고 있다. 10세피로트를 설명하고 있는 2,3편의 경우에는 해당되는 세피라의 속성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문체와 상징을 동원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세상의 이치에 궁금한 독자라면, 이 값진 보물 창고에서 호사를 누리며 답을 찾아나갈 수 있으리라 장담한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다. 번역하는 과정에도 적용된 문제이고 읽는 과정에도 적용될 문제다. 이 책을 가득 채우고 있는 수많은 사례와 상징들은 대부분 글을 쓴 시대적 배경과 유럽 특히 영국이라는 공간적 배경을 염두에 두어야만 이해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의역하지 않고 독특한 분위기를 그대로 살려 번역했다. 따라서 독자들은 그 시대적 배경을 반드시 염두에 두며 읽어야 한다. 지금 우리로서는 황당한 사례나 주장도 있다. 이것은, 현재 우리의 시공간 안에서 생생하게 펄떡거리는 상징과 연상의 고리들을 창조할 수 있게끔 하는 참고자료다. 다이온 포춘이 말하는 카발라 공부법이 바로 이것이니 말이다.

흔쾌히 감수를 맡아주신 박영호 님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카발라 지식이 미천한데도 감히 번역을 시작한 것은 그의 감수와 지원을 믿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히브리어와 헬라어, 라틴어 등 내 힘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부분을 해결해 주었다. 번역 일정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는데도 깔끔하게 편집과 디자인 과정을 마무리해준 편집팀 식구들에게 미안함과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힘든 번역 과정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아르고나우트’ 여러분의 응원 덕분이다. 틈틈이 응원 메시지를 날려준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옆에서 응원해 주고 영어와 관련한 조언을 아끼지 않은 재린에게도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전한다.

사실 국내에는 아직 제대로 된 카발라 입문서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 책의 출간을 계기로 카발라라는 보물 창고 열쇠가 많은 분야의 많은 이들에게 건네지기를 기대한다.

2009년 여름 밤
휘엉한 보름달 빛 아래서
정은주

<미스티컬 카발라> 12쪽, 역자서문. 全文
다이온 포춘 지음/정은주 옮김/좋은글방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