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시대에 ‘마법사’는 실제로 존재하는 직업이었다. 연금술사, 궁중마법사들은 왕 곁에서 자문을 하거나 국가적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다재다능했고 학식이 높은 사람이었다. 고전물리학의 아버지인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3~1727)만해도 물리학 공부는 덤이고 개인적으로는 연금술 연구에 더 심취한 것으로 유명하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로 유명한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도 자신의 저서 서문에서 ‘젊은 시절에 장미십자단과 접촉하려고 온 유럽을 돌아다녔다.’고 언급할 만큼 마법에 진심인 사람이었다. 르네상스를 거친 유럽의 당시 지식인이라면 마법에 대해 무관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1세(1533~1603)의 자문이었던 ‘존 디(John Dee 1527~1608)’는 점성가이자 대표적인 궁중마법사다. 마법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에노키안 매직(Enochian Magick)’의 창시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놀랍게도 ‘007’ 이라는 암호명을 처음 사용한 사람이기도 하다. 소설가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은 여왕의 첩보원인 존 디에 착안하여 제임스 본드가 주인공인 스파이영화 <007> 시리즈의 원작소설을 써내기도 했다.
비교적 가까운 20세기, 마법사 ‘프란츠 바르돈(Franz Bardon 1909~1956)’의 이야기는 더욱 흥미롭다. 그는 자전소설 <프라바토: 광기의 시대에 맞선 빛의 사제>에서 언급하기를, 젊은시절 마술 트릭이 아닌 ‘진짜 마법’을 활용하여 마법공연을 펼쳤다고 한다. 사람들은 고도의 트릭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는 언제나 공연을 마친 뒤 스테이지에서 어떤 원리로 방금 전의 퍼포먼스가 가능했는지 자세히 설명하기까지 했다. 그는 과학과 이성이 지배하는 시대에 아직 마법이 사라진 것이 아님을 온 몸으로 보여주었다.
에드워드 노튼 주연의 영화 <일루셔니스트>(2006)는 이러한 스테이지 마법사에 대한 기록을 잘 녹여낸 작품이다. 전 세계를 방랑하면서몇 백년동안 모습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불사의 연금술사 ‘생제르망(Saint-Germain)’, 역시 비슷한 행보로 유명한 ‘칼리오스트로(Cagliostro)’ 같은 이야기는 일종의 상징이자 모티프가 되어 현대 창작물에서도 꾸준히 재해석되고 있다. 여전히 마법과 오컬트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주고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로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마법사의 모습은 어떨까. 콘스탄티누스의 저서 <소환마법레시피>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현대를 살아가는 마법사에 대해 잘 표현했다. 소환마법으로 구직활동에 영존재의 힘을 빌리고자 하는 마법사의 모습이다. 영화 속 마법사들이 걸핏하면 운명을 건 대결을 하고 세상을 정복하려는 것에 비하면 소소해 보인다. 하지만 복잡한 현대사회에 더불어 살아가는 마법사에게 이는 드문 일이 아니다. 마법사도 물질적인 삶에 대해 고민하고 직접 발로 뛰어 해결해야 하는 일이 더 많다. 오히려 더욱 삶을 열정적으로 살아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마법사다.
마법사는 퇴거를 허락하는 문구를 읊었다. 그리고는 삼각형 안의 형상이 사라지기 시작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팔레그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진 다음, 클로징 의식을 거행하고 신전을 나와 새 양복으로 갈아입었다.
(중략)
마법사는 조금 후 치르게 될 면접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이 무정한 도시에서 어떻게 첫 직장을 얻을 것인가. 지난 몇 달 동안 그는 자신의 인생에 몰고 올 새로운 도전이 과연 무엇일지 기다려왔다. 그러나 잠 못이루는 밤과 근심으로 귀착될 뿐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다를 것이다. 주머니에는 팔레그의 인장이 들어 있다. 온 몸이 용기로 충만한 새로운 느낌. 그는 그렇게 기차에 올랐다.
<소환마법레시피>의 에필로그 중
평범한 청바지에 현대인의 필수품 스마트폰, 최신 노래를 듣고, PC방도 가고 동료 마법사들도 만난다. 물론 위에 언급한 <소환마법레시피>의 마법사처럼 생계를 위한 직장생활도 빠질 수 없다. 또는 개인의 습,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기간을 정하고 고행과 격한 수행의 시기를 선택하기도 한다. 다만 길거리 서커스마냥 자신의 재주를 자랑하거나, ‘나 마법사요!’ 하고 명동 한복판에서 외치지 않는다. 진정한 마법사이자 수행자라면 자신에 대해 침묵하기 때문이다. 위대한 서양철학자 스피노자도 본업은 렌즈 기능공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마법사에게 정말 중요한 일이 일어나는 곳은 제단, 신전에 들어간 순간이다. 마법사는 제단에서 경건하게 신과 교통하며 공양을 하고, 개인 수호자와 교류도 한다. 로브를 입고, 수행을 하고, 자신의 마법무기를 강화하고,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공부도 한다. 우주보편법칙에 대해 더 잘 알기 위해 이론과 실천 모두를 연마하는 것이다. 일상과 함께하는 마법. 그리고 제식을 치러 보편법칙을 잊지 않고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모습이 우리 현대를 살아가는 마법사들의 모습이다.